성골롬반

[골롬반 성인이 태어난 렌스터 마을]
  • 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의 주보성인인 성 골롬반은 543년경에 아일랜드 렌스터(Leinster) 에서 태어났다. 라틴어로 골롬반은 흰 비둘기라는 뜻이다. 골롬반의 자서전을 쓴 요나스(Jonahs)의 기록에 따르면 골롬반의 어머니는 눈부신 태양이 그녀로부터 나와서 세상이 온통 빛으로 가득차는 태몽을 꾸고는 골롬반이 특별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성 콤칼 성당에 있는 성 골롬반] 
  • 성 골롬반은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길을 떠나 클루인 이니스(Cluain Inis)의 시넬(Sonell) 수도원에 머물며 수도원장 밑에서 공부했다. 그 후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벨파스트록의 뱅거(Bangor) 수도원으로 갔다. 아일랜드에서 ‘수도사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신앙적으로 투철한 성 콤갈(St. Comgall)의 수도원에서 교육받은 후 서품을 받고 그곳에서 생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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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롬반 성인이 수도생활을 했던 집의 형태]
  • 콤갈 수도원의 규칙은 엄격했다. 물과 채소가 주식이었고, 수도사들은 흰 수도복과 모자가 달린 모직으로 된 겉옷을 입고 샌들을 신고 오두막에서 살았다. 일하고 단식하며 오랜시간 기도하며 살아가는 고행의 연속이었다. 시간이 지난 후 골롬반은 아브라함의 부르심,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창세12,1)”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자신 안에도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한 나그네’ 곧 선교사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명을 깊이 느꼈고 이에 응답했다. 골롬반은 12명의 수도사들과 함께 뱅거를 출발하여 모르는 곳으로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유럽 선교를 위하여 떠나는 골롬반 성인과 그의 동료들]
  • 골롬반 일행은 프랑스 북서부의 브르타뉴(Bretagne)에 도착하여 지내다 갈리아(Gallia)로 갔다. 그곳에서 수도원에 부정부패에 대한 설교를 했으며 그 열정과 단순한 삶의 방식들,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느낀 많은 이들이 다시 하느님께 돌아오게 했다. 골롬반의 열정은 당시 왕이었던 지그베르트(Sigbert)에게도 전해졌고 그는 안느그레(Annegray)에 수도원을 세워줄 것을 골롬반에게 요청하였다.
[소박한 그의 삶을 보여주는 유물들]
  • 골롬반과 수도자들은 허브와 나무뿌리, 나무 껍질등을 먹고 살았다. 그들의 소문은 사방으로 퍼져나가 그 삶을 따르려 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 590년 프랑스 뤽세(Luxeuil)에 기도와 금식, 노동과 학업을 근간으로 하는 이상적인 수도원을 세웠다. 이곳에서 골롬반과 함께 한 20년 동안 20명의 유명한 성인을 배출하기도 했다.
  • 이후, 골롬반은 데오도릭 왕의 도덕적 타락을 맹렬히 비판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추방당하는 시련 또한 겪었으며 스위스를 거쳐 이탈리아 보비오로 가서 다시 수도원을 짓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다가 615년 11월 23일 하느님 나라에 들었다. 그는 위대한 선교사였고 신부이자 수도자였으며 진정한 그리스도를 위한 나그네였다.

성골롬반의 기도

주님,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들을 당신의 축복과 당신의 도움 안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들을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은총으로 시작할 수 있게 하소서. 우리가 계획하는 모든 것들이 당신이 주시는 영감과 당신의 평화로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이 당신 안에서, 당신이 주시는 것으로 시작되고 마침을 알게 하소서.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당신의 사랑스런 현존 안에서 가능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소서.

아멘.